서론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의사와 약사의 분쟁이 첨예화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립은 사회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고 국민 보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러한 갈등의 진짜 이유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관점이 다른데서 비롯한다. 약사들의 입장은 이렇다. 양약이든 한약이든 다 같은 약이다. 그래서 약사가 한약을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의사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양약은 양약사가, 한약은 한약사가 다루어야 한다. 약사들의 한약에 대한 지식은 천박할 뿐 아니라 동양의학의 심오하고 통찰력있는 처방의 뜻을 모른 채 날림공사식의 처방 운용을 초래할 뿐이다.

필자는 한의사 입장에서 옹호하려는 글을 쓰고자 함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이런 갈등이 시작되고 어떻게 해야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을 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또한 대중들이 갖고 있는 한약에 대한, 좀 더 나아가서 동양의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아무래도 매스컴이나 교육에서는 서양의학의 관점을 많이 주지시켰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의학의 관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간단히 서양의학의 관점을 제시하고, 덧붙여 동양의학의 관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본론

1. 감기에 대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관점

몸이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나고 땀을 흘리며 두통이 있고 온 몸이 나른하고 기침을 하고  콧물이 나온다. 이는 누가 봐도 감기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의학에서는 감기 바이러스를 병의 원인으로 보고 해열제나 진통제를 사용하여 치료한다. 잘 알려진 양약으로는 아스피린과 타이레놀이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몸을 지키는 정기(正氣)가 약해지고 오장육부의 균형이 깨져서 외부의 사기(邪氣)가 침입해서 감기가 걸린다. 폐가 약해서 걸릴 수도 있고, 간이 약해서 걸릴 수도 있고, 위가 약해서 걸릴 수도 있다. 얼핏 보면 서양의학의 면역체계와 유사하지만 장부의 허실 개념이 있는 것이 다르다. 이에 대한 치료는 폐를 돕는 마황탕(麻黃湯)을 쓸 수도 있고 위장을 돕는 쌍화탕(雙和湯)을 쓸 수도 있다.

감기라는 한 질환을 놓고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이렇게 다르게 본다. 중요한 것은 치료효과이다. 감기가 아스피린을 먹고 나을 수도 있고, 쌍화탕을 먹고 나을 수도 있다. 이를 보고 어느 한 편이 우월하다고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논리이다. 학문은 어떤 결과를 놓고 그 결과를 이해시키기 위한 해석체계이다. 결과가 좋아야 학문이 좋은 것이다. 해석체계가 번드르하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학문의 우월성을 결과라는 잣대로 보아야 한다.

서양과 동양은 각기 다른 풍토에서 의학을 연구 발전시켜 왔다.  아스피린이 갖는 해석체계와 쌍화탕이 갖는 해석체계는 다르지만 감기를 치료한다는 결과에서 볼 때는 같은 것이다. 따라서 어떤 약이 자신의 감기를 잘 치료하는 지에 대해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굳이 어떤 해석체계가 더 그럴싸한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에게 맡기도록 하자.

2. 요통에 대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관점

요통을 쉽게 디스크라고 한다.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면서 척추에 압박을 주게 되어 자주 발생하는 질병이다. 요즘에 이르러서는 운동 부족과 장시간 앉아 있게 되므로서 하체가 약해져 발생하기도 하고, 골다공증이나 성인병으로 야기되는 수도 많다.

서양의학에서는 척추의 구조적인 문제로 요통을 이해한다. 일테면 건물의 골조가 약해지면 건물의 골조를 보강하는 작업을 하는 것처럼 척추를 보강하는 수술 내지는 물리치료를 한다.

동양의학에서는 척추가 약해지는 원인을 신허(腎虛 신장의 허약)로 본다. 여자의 경우 출산후 자궁과 신장이 약해지게 되고 골반이 제대로 정상위치로 돌아가지 못해서 요통이 발생한다. 골반의 교정과 더불어 자궁과 신장을 돕는 처방을 복용케 한다. 남자의 경우에도 신장과 대장, 소장이 약해져서 허리에 부담을 주게 되고 요통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치료 역시 허리의 교정과 더불어 신장과 대소장의 기능을 도와주는 처방을 사용한다.

여기서 허리에 대한 교정 역시 관점이 다르다. 서양의학에서는 근육과 척추를 자극해서 정상위치로 돌리고자 한다. 동양의학에서는 그 허리 부위와 연관된 다른 부위의 경혈에서 지압이나 침을 자침하여 그 부위를 활성화시키고 정상위치로 돌리고자 한다. 이른바 기공치료가 그것이다. 요즘에는 서양에서도 이러한 기공을 이용하여 물리치료에 적용하는 것이 널리 퍼지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처럼 요통에 대해서도 동서양 의학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3. 한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몇가지 제언

가. 약국에서 한약 처방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주로 동의보감, 방약합편, 상한론을 텍스트로 하여 처방을 사용한다. 위장병에 대한 처방만 해도 수백가지가 넘으며 그 처방들은 제각기 특색이 있다. 이러한 수많은 처방의 특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처방에 쓰여지는 약물부터 살펴 보자.

감초가 널리 알려진 약재인데, 이 감초를 그냥 사용할 때와 불에 구워 사용할 때의 효능이 다르다. 이는 본초(약물)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 처방을 나오게된 시대적 상황과 지역적 특성도 이해해야 한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위장병이 되었을 경우와 척박한 기후에서 궁핍하여 발생한 위장병의 증상은 당연히 다를 것이고, 거기에 따라서 처방 역시 다른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의학사적 관점에서 보야야 알 수 있다. 단순히 동의보감 책 속에 있는 문구로만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또한 현재 통용되는 약초의 이름과 문헌에 있는 약초의 이름은 같지만 실제 그 약초의 내용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리고 국내의 재배되는 약초와 중국에서 재배되는 약초의 약효 역시 매우 다르다. 양약은 한 공장에서 생산되어 모두 동일한 효능을 발휘한다. 한약은 자연 농산물이므로 제각기 등급이 있고, 그 등급에 따라 효능의 차이가 있다. 

나. 처방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증상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은 전립선과 방광염일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불면증이나 우울증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변비가 있다면 그 원인을 대장염으로 볼 수도 있고 만성위염때문일 수도 있다. 두통이 있을 때 체해서 그럴 수도 있고 목 뒤 근육이 굳어서 아플 수도 있다. 이렇듯 환자의 증상은 다양한데, 약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적용까지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는 많은 임상 경험을 한 의사들도 항시 어려워 하는 부분이다. 환자에 대한 겸허한 통찰이 필요하다.

다. 환자 체질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황청심환을 태음인이 아닌 다른 체질에게 복용시키면 심장 박동이 증가되고 어지럼증이 유발된다. 태음인에게는 좋은 약이지만 다른 체질에게는 독이 된다. 쌍화탕을 소음인에게 사용하면 좋은 피로회복제도 되고 좋은 감기약도 된다. 하지만 소양인에게 사용하면 고열을 동반한 몸살 증상이 생기고 심한 두통까지 생길 수 있다. 체질(사상의학)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정확하게 체질을 감별하는 전문가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너도 나도 유행이 되다시피 체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사상의학의 원전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한 번이라도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선생님이 사상의학을 펼치신 데에는 널리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고자 함이지 돈벌이에 사용하라는 뜻은 없었다.
체질 의학을 하는 모든 이들은 다시 한 번 동무공의 뜻을 겸허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라. 문헌에 나타난 증상을 아전인수격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동의보감을 예로 들어 보자. 동의보감은 백과사전적인 저서이다. 각 나라의 명의들의 저서를 발췌하여 정리하였고, 민간에 떠도는 유용한 지식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의 저서이다. 그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따라서 질병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공해시대에 발병되는 각양각색의 증상을 동의보감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동의보감의 기본 이치를 잘 받아들여 현재의 질병에 응용하여야 할 것이다.

동의보감의 올바른 활용은 임상에서의 풍부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임상적인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동의보감을 보고 제멋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동의보감은 방대한 증상과 다양한 처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난해한 용어 역시 많다. 임상문외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 사용할 수 있겠는가!

결론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을 받아들이면 된다. 어떤 질병에서는 동양의학이 간단하고 쉽게 치료할 수 있고 어떤 질병에서는 서양의학이 간단하고 쉽게 치료한다. 이러한 장점들을 잘 알아서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너무 쉽게, 또는 단순하게 이해하려고 한다. 스쿠알렌이 좋다고 하면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 약인지도 모른 채 모두 스쿠알렌을 먹는다. 고로쇠물이 좋다고 하면 당장 산에 있는 고로쇠가 결단이 난다. 쇠뜨기풀이 좋다고 하면 들판에서 쇠뜨기풀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어떤 약이든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고 특정한 체질에 적합한 약이다. 모두에게 좋고 모든 병에 좋은 약은 없다. 이제 약에 대한 이해가 선진화될 시점에 와 있다. 여기서 선진화란 그 약이 어떤 질병을 치료하고, 또 그 약이 자신의 체질에 맞는지 안맞는지를 아는 것이다.

앞으로 한의사와 약사는 갈등 속에 대립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약에 대한 정확한 이해, 정확한 사용을 주지시켜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국민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 때 의학에 종사하는 자로서의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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