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사상의학의 정확한 이해

현대인치고 체질의학에 대해 한번쯤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같다. '나는 손발이 차서 소음인이야', '너는 열이 많은 걸 보니 소양인이구나', '늘 느긋한 저 친구는 태음인이 분명해' 등등 ……

각종 잡지나 신문에서도 체질의학에 대한 특집을 자주 내보내 이제 체질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체질을 알기 위해 여러 한의원에 다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체질 판정이 저마다 다르고 어느 것이 정확한 나의 체질인지를 알수가 없고 혼란스럽다. 이리 가면 태음인이고 저리 가면 소양인이다. 왜 이렇게 저마다 다를까?

필자도 과거에는 네가지 체질을 다 한번씩 해보았다. 느긋하고 목의 힘이 약해서 태음인이라고 생각해 보았고, 순간 순간 급한 성격이 나타나서 소양인인줄 알았고, 상상력이 풍부해 태양인이라고도 짐작해보았고, 한가지 일을 깊게 생각하는 성향이 소음인일거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물론 네가지 체질약을 다 먹어보았다. 그래서 결국 어느 것이 나의 체질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체질의학을 소개하는 어떤 책에서는 '용모가 뚱뚱하고 땀을 많이 흘리면 태음인, 동작이 빠르고 마른 사람은 소양인'이라고 하는 등 생김새에 따라 체질을 정하고 그 사람에 맞는 음식과 해로운 음식을 도표로 나타낸다. 성격이 예민한 사람들은 그 도표를 부적같이 품고 다니면서 음식을 먹을때마다 확인을 하고 주변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한다.

체질의학은 과연 무엇일까?

체질의학은 사상의학을 말한다. 사상의학은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선생님의 독창적인 의학 체계이다. 동무 선생(1837∼1900)은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고 일생동안을 사상의학을 연구하셨다. 저서로는 동의수세보원과 격치고가 있다. 항간에 이야기하는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은 모두 동의수세보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은 성명론(性命論), 사단론(四端論), 확충론(擴充論), 장부론(臟腑論), 의원론(醫源論), 소음인편, 소양인편, 태음인편, 태양인편, 광제설(廣濟說), 사상인 변증론(辨證論)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동양의학의 역사, 인간의 성격과 기질, 체질에 따른 성격 수양 방법, 체질에 따른 증상과 치료, 인체 장부의 생리와 병리 등을 총망라하여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이론을 세운 것이다.

그러면 체질은 어떻게 다른가? 사람마다 폐비간신(肺脾肝腎)의 기능이 다르다고 보고 그에 따라 체질을 분류한 것이다. 태양인은 폐대간소(肺大肝小), 태음인은 간대폐소(肝大肺小), 소양인은 비대신소(脾大腎小), 소음인은 신대비소(腎大脾小)로 나누었다. 여기서의 대소(大小)는 기능의 크고 작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장(脾臟)의 개념이 생소한데 사상의학에서는 비장을 췌장과 지라를 합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의학과 사상의학의 인체 생리 개념은 다른 점이 있는데, 이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자.

몸살 감기를 예로 들어보자. 감기는 그 증상이 열이 나고 기침을 하고 콧물이 나고 온몸이 욱씬거린다.(감기의 증상도 천차만별이지만 흔한 증상을 말한 것이다.)
소음인의 감기는 신장에 열이 생겨 발생하고, 태음인의 감기는 기관지와 폐가 약해서 생기는 것이다. 소양인의 감기는 비장에 열이 생겨 발생하고, 태양인의 감기는 간기능이 약해서 발생한다. 체질에 따라 감기의 발생원인과 증상이 다르고 치료법 역시 다른 것이다.

사상의학에서는 증상 이전에 어떤 체질인지를 먼저 판정하고 그런 연후에 증상에 따라서 처방을 사용한다. 일테면 쌍화탕은 소음인에게, 마황탕은 태음인에게, 형방지황탕은 소양인에게, 오가피장척탕은 태양인에게 사용한다. 만일 쌍화탕을 소양인에게 사용하면 증상이 더 악화되는 것으로 본다. 기존의 한의학에서 쌍화탕을 일반적인 감기처방으로 사용했는데 개별적인 처방 운용이 사상의학의 특징이다.

자동차가 디젤차, 가솔린차, 전기 자동차, 태양열 자동차 등이 있다면 그에 따라 연료가 다르듯이 체질마다 적합한 약재, 음식 등이 애초부터 다르다.

실제로 양방, 한방을 다 가봐도 잘 치료되지 않는 병들이 이러한 체질의학으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요즘 많은 한의사들이 체질의학을 주된 간판으로 걸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체질의학의 관계되는 책만 해도 아마 수십권은 될 것이다. 그중 대부분의 책들이 체질식단표를 제시하는데 제각기 다르고 분류기준도 객관적이지 않다.

심지어는 사상의학의 원전인 동의수세보원의 내용과 틀리는 오류까지 나타난다. 이는 사상의학에 대한 기초 소양이 부족하고 엄정한 검증을 거치지 못한 때문이다. 사상의학을 공부하는 문도로서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현상이다.
또 오링테스트를 하거나 바벨을 사용하여 체질을 판정하고, 레이저침이나 몇가지 기계장치로 판정하는 방법도 있다.

모든 방법이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100% 정확한 체질판정법은 아직 없다. 간혹 100% 정확하다는 판정법을 들먹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동의수세보원조차 한번 읽어보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체질 판정법이 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적어도 그 가설이 타당해야 하고 엄격한 검증을 통해 입증되어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필자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대부분 자기 체질이 무슨 체질인지 궁금해한다.
"책을 읽어보면 제 성격은 소양인이던데요."
"TV에 출연하는 어느 박사한테 갔더니 태음인이래요."
"단전호흡학원에서 태양인이래던데요."
"난 열이 많아 인삼이 안 받아요."
"큰 병원에서 수십장짜리 설문지 검사를 하니 소음인이 나왔어요."

이런 경우 어떻게 이야기해야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필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병이 나았습니까? 병이 나았다면 그 체질이 맞는 것이고, 병이 낫지 않았다면 재고해봐야 합니다."
체질 판정을 성급히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체질 판정이 치료효과로써 검증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 판정도 가설로 인정해야 한다.

요즘은 가히 체질의학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천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개의 성격이 있다. 한 개인의 성격도 그 속에 수많은 변화가 있다. 그런데 유심히 관찰해보면 공통적인 성격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상의학의 성명론의 시작이다.
천명의 환자가 있으면 천개의 증상이 있다. 한 환자의 증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런데 치밀하게 살펴보면 공통적인 증상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상의학의 질병론의 시작이다.
성격과 증상은 대단히 밀접하다. 위장병 하나에도 소심해서 생기는 위장병이 있고, 다혈질이어서 생기는 위장병이 있다. 이처럼 자세히 관찰해야 질병과 성격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예방 접종이나 신약이 개발되어 급성질환보다는 만성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다. 만성질환은 변화가 다양하여 증상의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증상과 성격이 복잡해져서 체질감별이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치료효과의 탁월함을 보게 되면 아무리 감별이 어려워도 반드시 정확한 체질 감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정확한 체질 감별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오링테스트를 해본다.

테스트를 할 때 주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틀리기가 쉽다. 전자파를 피해야 하고, 검은색 옷을 입으면 안되고, 수맥이 지나가는 곳에서도 안된다. 이렇게 세심하게 테스트를 해야하는데, 대부분이 아무렇게나 한다. 또 오링테스트 자체가 100%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다만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둘째, 체질약물을 단방으로 복용해본다.

소음인은 인삼, 태음인은 갈근(칡), 소양인은 구기자, 태양인은 모과 등을 일주일 정도 하루에 4, 5회 정도 복용한다. 소변이 투명해지고 대변색이 황금색이 되면 그 약은 나의 체질에 맞는 것이다. 절대로 선입견을 갖지 말고 관찰해보아야 한다.

셋째, 형상으로써 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일반인에게는 가르치기가 어렵다. 관상의 대가들은 목욕탕에서 몇 년간 사람의 몸을 관찰해야 비로소 관상의 기본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처럼 형상으로 보는 법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단순히 목이 발달하면 태양인이고, 허리가 발달하면 태음인이다라는 식의 접근은 대단히 경솔하다.

넷째, 성격으로써 보는 방법이다.

이 방법 역시 파악하기가 어렵다. 사람마다 자신의 관점에서 남을 보기 때문에 그것이 객관적인 성격 파악이 될 수가 없다. 많은 노력이 있어야 나의 성격과 남의 성격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다섯째, 글씨체, 걸음걸이, 잠자는 모습 등으로 보는 방법이다.

체질의 기 흐름에 따라 글씨체가 다르다. 태양인과 소양인의 글씨체는 날렵하고 처음에 힘이 들어가고, 태음인과 소음인의 글씨체는 원만하고 나중에 힘이 들어간다. 유명한 서예가들의 글씨체 역시 그 체질에 따라 다르다.
횡단보도를 급히 걸을 때 자신의 기에 따른 걸음이 나온다. 그 걸음 역시 체질에 따라 다르다. 태양인은 발끝을 박차고 걷고, 소양인은 어깨의 움직임이 많고, 태음인은 허리가 중심이 되어 팔다리를 움직인다. 소음인은 엉덩이가 무겁게 다리가 움직인다.
이처럼 움직임을 체질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판별법이 있지만, 주된 방법만 나열해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질병이 치료되어야 그 체질이 맞는 것이다. 항상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확한 체질 파악은 건강과 장수의 지름길이며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체질을 알면 수양방법 역시 알게 되는 것이다. 일률적이고 보편적인 수양방법은 없다. 체질에 따른 개개인의 수양법이 있는 것이다. 괜히 스스로를 자학하거나 억지로 반성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만병통치약이 없듯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인격수양법이 없다.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살려야 하고, 지나친 점을 경계하면 그것이 자신의 수양이 된다.
이렇게 하다보면 네가지 체질의 장점을 두루 갖추게 되고, 가히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원인 불명의 병에 대해 스트레스를 원인이라고 많이 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스트레스가 어떻게 그 체질에게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살피지 않는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체질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 취급한다.

체질의 성격을 잘 판별하면 체질에 따른 스트레스 지수가 나올 것이다. 많은 의학 분야에 사상의학은 큰 도움을 줄 수가 있다. 머지 않은 시일에 혈액형 검사를 하듯이 100% 정확한 사상 체질 감별법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중구난방의 사상체질 판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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