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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병에 걸렸을 때 적어도 3군데 병원은 가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맹장염(盲腸炎)인 줄 알고 개복(開腹)을 했는데 맹장염이 아니었다. 그냥 덮게 되면 의료과실(醫療過失)이 되므로 멀쩡한 맹장을 떼낸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의사들끼리만 알지,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환자 자신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이러한 예를 보더라도 의사 한사람의 말만 듣고 그에 따른 치료나
수술을 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 알 수 있다.
X-ray나 CT사진을 판독(判讀)할 때에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전문가가 일치된 진단(診斷)을 해야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두명 이상이 판독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전에 신장(腎臟) 부근에 어떤 종양이 나타나는 CT사진을 두 전문가에게 의뢰한 적이 있었다. 한 전문가는 이것만 가지고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진단을 했고, 다른 전문가는 그 종양의 강도가 8.9이며 악성 종양은 아니지만 더 정확한 진단을 받으려면 조직(組織)검사를 해보는게 좋겠다는
견해를 보였다.
같은 사진을 가지고 크게 수준 차이가 나는 진단을 한 것이다. 한 사람은 경험이 부족한 전문가였고, 한 사람은 그 분야에 저명한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CT사진을 가지고도 이같이 다른데 다른 경우에는 얼마나 많은 견해차이가 있을 것인가?
임상(臨床) 경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잘못된 진찰과 그에 따른 효과적인 대처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 심한 요통(腰痛)은 어떤 치료가 좋을까?
70대 초반의 할아버지가 정원 손질을 하다 허리를 삐끗해 걷지도 못하고 업혀서
왔다. 진찰해본 결과 두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 평소 골프를 즐겨 치고 마무리 운동을 하지 않아 요추(腰椎) 근처의 근육이 긴장되어 있었다.
둘째, 저녁때 간식을 먹는 습관 때문에 대장염(大腸炎)이 있었으며 복부에 가스가 많았다. 동양의학에서는 장(腸)이 나쁘면 허리가 약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우선 침(針)치료로 요추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환자는 업혀서 왔지만 나갈 때는 스스로 걸어나갈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장(腸)이 회복되어야 재발이 되지 않으므로 치료를 더 받으라고 말했다. 집이 먼
탓인지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다시 악화되어 K대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몇 명의 스텝들이 정밀진단을 한 끝에 요추를 절단하고 인공 보조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수술 후에도 골프는 당연히 못치고 겨우 걸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수술하기 전에 마지막 희망으로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수차례 찍은 CT사진을 가지고 왔는데 소견서를 읽어보니, 엄청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큰 일날 것같은 내용이었다. 어차피 수술을 할 것이라면 속는 셈치고 내 치료대로
해보자고 했다.
환자의 체질에 맞는 식이요법(食餌療法)과 봉침(蜂針) 요법, 교정(校正)요법, 침치료를 1개월간 했다. 그결과 환자는 완치되었고, 지금도 골프를 친다고 한다.
2. 급성 맹장염은 꼭 수술을 해야 하는가?
30대 후반의 남자가 세 군데 병원에서 급성 충수염( 垂炎, 맹장염) 진단을 받았는데 모두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왔다.
진찰해 본 결과 평소 과식과 과음을 한 탓에 배가 많이 나왔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 때문인지 지방간(脂肪肝)이
있었다. 사상체질로는 소음인(少陰人)이었다. 위(胃), 십이지장(十二指腸), 소장(小腸), 대장(大腸)의 기능이 약화되어서 충수염이 된 것이다. 소화 기능을 회복시켜주고 지방간을 좋아지게 하면 충수염은 자연스럽게 나을 수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봉침치료를 3회 받게 한 후, 체질(體質)처방과 체질침 요법을 병행했다. 일주일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니 충수염이 나았다. 지금까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다.
3. 비뇨계 질환이 걸린 20대 남자.
20대 후반의 남자가 성관계를 한 후에 소변이
시원치가 않고 통증이 심했다. 비뇨기과(泌尿器科)를 여러차례 다녀봤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동네 약국에서 기(氣)가 허하다는 진단을 받고 한약을 15일간 복용하였다. 증상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소화불량이 생겼다. 이같은 이야기를 동네 약국 약사에게 했더니 약효가 부족하니 15일을 더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못미더워 우리 병원에 찾아왔다. 원인은 전립선(前立腺)과 방광(膀胱)의 기능이 약한 것이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직업이어서 운동부족이 되었고, 정신적인 피로가 과중한
상태였다. 체질은 소음인이었고 신장 기능이 약한 케이스였다.
아마도 비뇨기과에서 염증(炎症) 치료만 해서 큰 차도가 없었고, 약국에서는 그 환자 체질에 적합한 한약을 쓰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체질약을 복용시키고 특별히 처방한 외용약으로 통증 부위를 세척하게 하였다. 20일만에 완치되었다.
4. 한약은 절대 먹으면 안된다는 S대 병원의 간전문의
한약이 간에 나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편으로 맞는 이야기이고, 한편으로는 틀린 이야기이다. 자기 체질에 맞는 한약은 간을 좋아지게 할
것이고, 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한약은 간을 나빠지게 할 것이다.
소음인 지방간 환자가 쑥(인진 茵蔯)을 먹으면 호전될 것이고, 소양인(少陽人) 지방간 환자가 쑥을 먹으면 악화된다. 태음인(太陰人) 간염 환자가 웅담(熊膽)을 먹으면 좋아지고, 태양인(太陽人) 간염 환자가 웅담을 먹으면 나빠진다.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왜 S대 병원의 간 전문의는 한약이 간에 나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
나의 추리는 이러하다. 한약을 먹고 간이 좋아진 사람은 S대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 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한약을 먹고 증상이 악화된 사람은 S대 병원에 갔을 것이다. 따라서 그 전문의는 한약을 먹고 악화된 사례만 경험한 것이다. 그러니 한약을 절대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분야의 권위자라고 하더라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한 의사가 은퇴하는 자리에서 '나는 평생 50% 정도의 오진(誤診)을 했다'라는 고백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수많은 의사들은 경악했다. '역시 명의는 그정도 밖에 오진을 안하는구나'라는 생각에서 놀란 것이다.
의사도 사람인 이상 잘못된 진찰과 치료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잘못된 치료로 고생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에는 적어도 3군데 이상의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현명한 자세이다.
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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